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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최종태2004/12/20
나는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최 종 태



무제/1987/45 x 60/파스텔


파스텔을 만지기 시작한 것이 그럭저럭 15년쯤 되었다.



무제/1971/25 x 25 x 25/테라코타


조각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생각할 일이 너무도 많고 또 세계 미술사에 짓눌려서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담없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던 중 파스텔이 손에 잡힌 것이었다.

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못 그렸다해서

나를 욕할 사람도 없고 해서 마음이 편했다.



무제/1988/26 x 35/연필,파스텔


본대로 느낀대로 그냥 해 나갔다. 풍경, 정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보이는 대로 형태를 그리고, 있는 그대로 채색을 해 나갔다.

그러는 가운데 조각하는 일도 점점 자유롭게 되었는데 거꾸로 파스텔 그림이

점점 어렵게 되는 것이였다.

언젠가 문득 생각이 났는데 내가 회화(繪?)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제/1973/13 x 25 x 63/테라코타


파스텔은 건성으로부터 유성에 이르기까지,

또 곱고 부드러운 것으로부터 거칠고 점질이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해서 다른 재료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특수한 이점(利点)이 있다.



무제/1988/31 x 46/파스텔


나는 손으로 문질러서 발색되도록 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데

겹겹이 발라서 종이 위에서 혼색을 시킬 때 예기치 않은 재미나는 색채를 구할 수가 있었다.

마음에 안 찰 때 다 털어내고 그 위에 다시 그리면 또한 별미가 있었다.



무제/1975/44 x 25 x 82/화강석


나는 사람을 그린다. 얼굴을 주로 그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눈과 입의 모양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이였다.

내가 그리는 얼굴은 실재의 얼굴과는 많이 다르게 되어있다.

나는 좋은사람, 착한사람, 훌륭한사람을 그리고 싶은 것인데 그려도 그려도

그게 안되기 때문에 자꾸만 그리게 된다.



무제/1991/40 x 31/파스텔


나는 나의 비젼에 충실하고자 한다.

내가 접근하고자 하는 얼굴을 그리려 할수록

그 얼굴이 직접적인 사실(事實)로부터 멀어져가는 것이다.

형태는 상징적이고 재구성된 모습으로 변용되는 것이었다.

나는 실재(實在)하는 얼굴을 그리려 하는 것인데

그 비젼에 충실하려 할수록 실재의 얼굴로부터 떠나게 된다는 말이다.



무제/1976/21 x 11 x 34/나무


나는 모델을 쓰지 않는다.

조각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아직 한번도 모델에 의해서 작업을 한 적이 없다.

풍경이나 정물에 있어서도 점점 대상으로부터 떠나고 있다.

비젼만이 나를 움직인다. 나는 나의 마음속에 있는 얼굴을 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무제/1991/41 x 32/파스텔


나는 실재하는 얼굴을 그리려 하는 것이지 실재하는 얼굴의 외형을 그리려 하는 것이 아니다.

회화로서의 실재는 눈앞에 실재하는 것과 어떤 면에서는 같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전혀 별개의 독립체이다.



무제/1975/16 x 5 x 36/나무


자연과 인생에 대한, 그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절대적인 확실성의 세계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조각이고 나의 그림이다.

그것은 끝날 수가 없는 일이며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을 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조각이라든지 그림이라든지 하는 구별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목표에 접근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매일같이 실패이기 때문에 또 그 모험에 도전해야하는 것이다.



무제/1991/35.5 x 25.5/파스텔


쟈꼬메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왜

이렇게도 안되는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라고. 아마도 둘 다가 아닐까 생각된다.



무제/1977/20 x 25 x 110/청동


리얼리티의 실현은 어떤 양식(樣式)에도 달할 때에만 가능하다.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 내 마음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나는 나의 얼굴에 담으려한다.

그것은 나의 삶 자체일 수 밖에 없다.



무제/1992/40 x 31/파스텔


삶과 죽음 사이의 그 이름할 수 없는 빈 공간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한잎의 풀이파리처럼 나의 그림은 그렇게 존재한다.

공간, 그 무서운 곳을 어지르는 행위, 오직 일회성(一回性)의 행위,

전제란 성립되지 않는다. 삶의 수수께끼를 푸는 그 대모험이 그림행위가 아닐까 싶다.



무제/1978/16.5 x 28 x 62.5/나무


내가 그려놓고 그 그림에 내가 취해서 몇 시간이고 바라본다.

길게는 이삼 일(二三日)도 가는 수가 있다. 그러다가 점점 초라해진다.

나는 그 초라해지는 나의 그림들을 바라보며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영원한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영원한 기쁨을 얻기 위해서,

삶의 의미, 죽음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오늘도 싸워나가는 것, 나의 조각,

나의 그림은 거기에 있다. 나는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무제/1988/45 x 60/파스텔


무제/1980/32 x 20 x 53/청동


최종태의 예술은 세 가지 방향에서 접근하고 분석해 볼 때 확연히 드러난다.

첫째는 형태에 대한 탐구 내지는 믿음에 가까운 존경이며,

둘째는 조각하는 일 자체가 구도하는 일이라는 그의 창작자세,

셋째는 그렇게 하여 이룩되는, 아니면 그가 추구하는 바의 조형목표는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만남, 이성과 감성의 만남,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만남인 것이다.



무제/1988/31 x 46/파스텔


이렇듯 최종태가 형태에 믿음에서 출발하여 구도하는 마음으로 조각하는 일,

그것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조형목표는 어떤 절대적인 것의 표현이었다.

그의 예술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실은

절대적인 것의 한 부분으로서 종교성인 것이다.



무제/1982/7.5 x 38 x 53.5/대리석


1932 충청남도 대덕 출생

195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60 국전 문교부 장관상

1970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로 부임, 〈회향〉으로 국전 추천작가상 수상

서울대 정년퇴임, 서울대 명예교수

국민훈장 동백장

현재 카톨릭 미술가협회 회장

김종영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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