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 신학대전 요약
♤ SUMMA란 무엇인가?
♤ 구원의 역사와 교육의 순서
♤ 신학대전의 구조
1. 'SUMMA'란 무엇인가?

이 'SUMMA'라는 말마디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이 "신학대전"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SUMMA'란 말이 12세기에 처음 사용되게 되었을 때, 그것은 '명제들(sententiae)'의 간명하고 종합적이고 총집약적인 수집을 가리켰다. 그것을 통해서 수집자는 가톨릭 가르침(또는 다른 여하한 가르침)의 진리들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오래도록 우고 쌩 빅똘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던 Summa sententiarum(1140년경)은 이런 종류의 첫 모델 중 하나였다. 그것은 그저 단순히 교부(敎父, doctor ecclesiae)들의 증언들을 수집해 놓은 것이 아니라, (비록 수집된 본문들의 테두리 안에서이긴 했지만) 공들여 체계화된 것이었다. 호노리우스(Honorius of Autun)가 "기독교 역사 산책"을 편찬했을 때, 나는 그것을 'SUMMA'라 불렀다 : "나는 의도적으로 이것을 'SUMMA TOTIUS(총체적 집약)'이라고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성서 전체 속에 포함된 일련된 사건들이 '집약적 방식으로'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벨라르두스(P. Abelardus : 1079~1142)는 '사도신경'이 'SUMMA FIDEI', 즉 신앙 진리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신학입문"에서 구원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여겨지는 세 가지 요소들을 중심으로 그의 자료를 체계화했다 : "신앙 사랑 성사, 이 세가지가 인간 구원의 'SUMMA(요체)'를 구성한다." 로베르또(Robertus of Melun)는 말한다. " 'SUMMA'란 [...] 간략한 집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사실 특정 자료들의 '요약(compendium)'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SUMMA'는, 그 전 시대의 'Sententiae(명제집)'와 'Florilegia(발췌록)'들을 넘어, 12세기의 주도적인 저술 형식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학자들의 작업은 발전해 갔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대학(universitas)에서의 전문적 교육은 점점 더 사목적, 도덕적 관심사들로부터 독립되어 갔다. 이리하여 '신학의 체계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신학은 그 대상을 구조화하려고 애를 썼고, 그리하여 신앙의 빛 속에서 활동하는 인간 정신의 합리적 구조에서부터 연역되는 웅장한 원리들에 기초해서 신학 전체를 체계화하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SUMMA'라는 말마디는 그 새로운 잠재력을 드러내게 되어, 무엇보다도 '종합(synthesis)'의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게 되었다. 그 결과, 이런 발전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13세기에는 'SUMMA'란 세가지 목적을 담고 있는 문학 작품을 가리키게 되었다 : a) 특정 학문 전반에 걸쳐서 간결하고 상호 연관적인 방식으로 개진한다(이것이 바로 'SUMMA'의 원래의 의미였다). b) 그 학문 영역의 대상들을 세부적으로 분석할 뿐 아니라 하나의 종합적 방식으로 조직화한다. c) 이 모든 작업을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알맞은 방식으로 재정리한다. '교육의 순서(ordodisciplinae)' - 이 표현은 훌륭한 교수법과 함께 백과사전적이고 종합적인 기획(企劃)의 합리적 구조를 멋지게 표현하는 것이 된다. 모든 분야에서, 그 가장 완벽한 구현이었다.
"신학대전"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상황들은 13세기 'SUMMA'들 속에서 추구되던 목적을 확인해 준다. 역사가들은 성 토마스의 전기 작가 똘로메오(Tolomeo da Lucca)가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본다 : "성 토마스는 막 착수한 명제집의 두 번째 해설을 포기하고 그의 정신의 요구를 채워줄 만한 신선한 새로운 작품 집필에 들어갔다." 1)
"신학대전" 편찬은 1267년에 착수되었다. 그러나 1274년 성 토마스가 죽을 때까지 애석하게도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제3부 제90문 '고해성사'를 다루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 못다한 작업을 그의 "명제집주해"를 참조하여 '보충'하였는데,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성 토마스의 동료 회원이자 제자인 레지날드 삐뻬르노(Reginaldo Piperno)였을 것이다.
어쨋든 성 토마스는 그의 짧은 '머리글'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간격 또는 적어도 현행 교육방식에 있는 한계들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와 세부 문제들을 늘리는 것, 반복 불필요한 논의 일탈 등은 사람의 정신을 혼란시키고 지겨움만 자아낼 뿐이다. 더군다나(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더 큰 결함이다) 그러한 교육 방식 자체가, 그것이 어떤 기본 명제들에 대한 주석이든 아니면 토론 문제이든 한결같이,(오직 자발적으로 마음이 내킬 때라야만 그 대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이러한 근본적 요구를 차단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 [그들이 배워야 하는 내용들이 적절한 교육 순서에 따라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lectio)이나 심지어는 학자들 간의 논쟁이나 주석에 필요한 내용들(quaestiones)이 무분별하게 가르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대전" '머리글'). 성서 '강독(lectio)'{이것은 특히나 신학 교수의 일차적 담당 과목이었다}에서든. '토론 문제들(quaetiones disputatae)'{이것은 신학 교수의 교수로서의 가장 으뜸가는 공개적 활동이었다}에서든. 신학을 '학문'으로서 구성한다는 것은 명백히 불가능했다. 강독자(lector)는 그의 본분에 묶여 있었고, 토론자(disputator)는 토론이라는 우연적인 주변 여건들에 매여 있었다.
성 토마스는 '교육 순서(ordo disciplinae)'라는 말을 사용한다. 바로 학문의 대상 자체가 이런 '질서'구성을 요구하고 있었다. 학문의 대상은 (바로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정확한 형식들이라 하더라도 깊이까지 관통해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그 감추어진 질서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결코 인간 정신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대전"과 그 저자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교육 순서'를 통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구분과 소구분으로 되어 있는 논리적 작업 구상뿐 아니라, 작품이 완성되고 난 다음에도 그 구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내적인 생동감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실상 이 흐름은, 전체 구조를 일관하고 있는 학문적 근거들과 함께 저자의 지혜로운 선택들을 밝혀 준다. 바로 이 저자의 선택들을 통해서 곳곳에서 이런저런 부분들이 강조되고 또, 꼭 그 자라에 배치할 필요성 같은 것들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컨대, 이 "신학대전"에서 제2부 제1편의 말미에 있는 은총에 관한 논술이, 제3부를 개막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논술 이전에 놓여져 있는 것은, 바로 어떤 분류의 단순한 질료적 역학 구조를 통해서였단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성 토마스가 이렇게 구성했을 때, 그는 마음 속에 어떤 결정적인 목적을 품고 있었고, 그래서 이런 배열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신학대전"의 구상은 바로 성 토마스의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접근로'이다.


2. 구원의 역사와 '교육의 순서


모든 학문 영역에 있어서, 학문의 대상은 그 내용을 체계화하려는 인간 정신의 노력에 대해 일종의 '저항'같은 것을 보여 준다. 신학에 있어서, 신앙이 인간 지성에 제시하는 소여(datum)는, 그것을 개념적 형태로 구조화허려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적당한 체계화에 노골적으로 저항하기까지 한다.
신의 말씀은 신 자신의 사고라는 점에서 완전히 하나이다. 그러나 신학에 있어서 어떤 체계의 필요성은, 신앙의 소여에 근거해서 작업하는 인간 정신의 '능력'을 드러낼 뿐 아니라 동시에 그 '나약성'도 보여 준다. 13세기의 'SUMMA'들의 체계는 주제의 웅장함을 잘 보여 주면서도 동시에 거룩한 역사를 어떤 조직화된 학문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성서학 교수'가 이제는 '신학 교수'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성은 신학분야에서 결정적인 진보를 이룬다. 우리는 성 토마스의 경우에 바로 이 진보의 요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대전"의 구상을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수세기를 두고, 성서를 이해하려는 대단히 뛰어난 지성들의 노력들조차도, 성서 본문(및 그와 직결되는 역사적인 논의 전개)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얽매여 있었다. 단순화와 체계적 분류의 필요성은 고작해야 몇몇 '신경' '교리서' '발췌록'등을 내었을 뿐이다. 중세 초기에는 학교에서조차도, 문학 작품의 기본 모델(prototypus)은 '창세기' 첫장의 주해서인 'Hexaemeron(6일 창조)'의 해설이었다. 12세기에 이르러, 이미 그 구조에 있어서 웅장했던 우고 쌩 빅똘의 권위있는 작품은 권(卷)과 장(章)의 구분법을 따르면서도 역사적 순서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제1권은 세계 창조에서부터 말씀의 육화(肉化)에 이르는 분석적 서술을 다룬다. 그리고 제2권은 말씀의 육화에서부터 만물의 종말과 소멸에까지 이르는 순서로 전개된다." 구원사(救援史)는 온통 '육화 사건'에로 초점이 모아진다. 설화(說話)들은 바로 이궤도를 타고 전개된다. 우고의 작품은 '구성적'이면서도, '거룩한 역사'의 테두리 안에서 수행된다.
같은 시기에, 'summa sententiarum(명제집)'에서(특히 아벨라르두스의 작품에서) 완전히 새로운 실험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역사적 순서가 완전히 포기되고, 구원사를 구성하는 모든 사건들 요소들이 '학문적' 범주로 환원되어, 일반 관념과 종합적 원리들의 빛 속에서 체계화되고 분류되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성 토마스는 자기의 "신학대전"을 위해 '교육의 순서'를 발견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아벨라르두스와 롬바르두스 시대 이래로, 새로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부터 영감받은 '학문(scientia)' 개념은 아주 깊이까지 철저히 잘 다듬어져 있었고 각 분야에 두루 적용하게 되었다.
학문이란 '체계화된 지식'이었다. 사물들의 원인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경험 소여 작업과 사고는 추상 관념들을 언결시키고 나누고 분류하는 일련의 분석과 종합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개념들의 깊이와 폭을 통해서, 모든 사물의 본성들이 논리적 분류 속에서 각기 제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어떤 '질서'확립의 기초가 제공되었다. 이리하여 이때부터 '학문'이라는 칭호를 주장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그 '도식(schema)'이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빛나는 유산을 통해서 '학문' 개념이 그 방법론과 의미에 있어서 생명력과 꼴을 갖추게 되자, 13세기 초의 학자들은 이 학문 개념을 자기들의 신학적 노력들에 적용하는 문제에 부딛치게 되었다. 거룩한 가르침(계시진리)은 하나의 학문인가? '구원 경륜' 탐구는, 그리고 그 경륜이 펼쳐지는 성서의 설화들의 해석은, 그 거룩한 역사의 본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학문'이 요구하는 특성과 구조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즉시 역사적 설화를 하나의 '학문적' 형식으로 만들려는 여하한 시도도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엄청난 '저항'을 볼 수 있다. 역사적 설화란 일련의 우연적인 사건들을 고유 대상으로서 지니고 있는 법이다. 이 사건들은 신과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그들은 발생과 연속적 계기에 있어서 무조건적이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일련의 원인들이나 연역적 연쇄 고리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분류에서 처음부터 배제된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역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원사의 바로 핵심인 그리스도의 신비는, 시간적으로 예비되어 오고 마침내 실현된 것으로서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저 역사적 우연성들의 맥락으로부터(성 아우구스티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의 섭리의 시간 속 안배의 역사') 추출될 수 있을 것인가? 요컨대, 어떻게, 그 본래적 구원 경륜에서 벗어남이 없이, 계시된 내용들을 어떤 사변적 질서에 따라 재배열하여 인식 가능한 체계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아벨라르두스는 모든 신앙 진리들을 일정한 구상에 따라 분류했었고, 이것은 상당히 이론적이고 교육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신앙(fides) 사랑(caritas) 성사(sacramentum)가 바로 계시 내용을 압축하는 요소들이었다 : 즉 신비(삼위일체 육화 창조 원죄), 기독교적 생활(사랑 덕행 계명들), 성사들 - 오늘날로 말하자면 교의신학 윤리신학 성사신학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질서는 결정적으로 모든 역사적 전개의 흔적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아벨라르두스의 변증법적인 기질이 이런 초라한 변형을 감내할 수 있었다하더라도, 이런 어떤 추상화의 이점은 극도로 피상적이고 현실적인 어떤 분류 그 이상을 넘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거룩한 역사의 전개를 존중하고 있는 우고 쌩 빅똘의 배열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성 토마스는 아벨라르두스의 인위적인 추상화에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구원사를 참으로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 '교육 순서'를 도입했다. 그는 어떤 방식을 통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세계를 넘어 성 토마스는 플라톤 전통의 '유출(emanatio)'과 귀환(reditus)' 주제에 호소했다. 신학은 신에 관한 학문이기에 모든 것은 그 기원이나 최종 목적에 있어서, 즉 발원(發源, exitus)과 귀환(reditus)에 있어서, 신과의 연관 속에서 연구되어야 했다. 얼마나 찬란한 가지성(可知性, intelligibilitas)의 원천인가! 이제, 모든 것 모든 유(有) 모든 행위 모든 운명들은 고도의 일관성 속에서 제자리 잡고, 인식되고, 판단되게 될 것이다. 이 인과성(因果性, causalitus)속에서 그들의 유(有)의 근거는 신 자체의 빛 속에서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학문을 넘어 하나의 지혜이다. 이 놀라운 신플라톤주의의 테마는(지금으로서는 기독교적이니 이교적이니 따지지 말기로 하자) 희랍 철학자들의 인식론과 연속선상에 있었긴 하지만, 그 희랍 철학의 잠재력을 그것이 피조물의 생성을 설명키 위해 도달했었던 지평(地平) 훨씬 넘어로까지 발전시켰다.
그것은 우주 질서에 대한 도식이다. 그것은 그 속에서 인간 지성이 모든 본성들의 공통 뿌리에 도달하게 되는 유(類)와 종(種)에 따른 분석적 배열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신플라톤주의의 도식은 동시에 '역사'에도 어울린다. 그 역사의 개막은 바로 세계 창조의 묘사이고, 그 전과정은 신의 피조물 통치이며, 그 결말은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며 행동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궤도 위에서 우리는 구원 역사에 기록된 사실과 업적들을 배열할 수 있다 - 그것들이 신과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존하고 있는 우연유(contigentia)를 지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우연유성'의 발견이야말로 '기독교적 신플라톤주의'의 빛나는 성취이다.
"신학대전"의 구상과 그것이 담고 있는 구세사의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다 : 원리인 신으로부터의 발원(1부), 목적인 신에게로의 귀환(2부), 그리고 실상 구세사가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신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계획에 따라 이 귀환은 신-인(神-人)인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3부는 이 귀환에 대한 '기독교적'조건들을 다룬다. "대전"의 다른 어느 부분에서보다도 이 3부에서 '역사'는 주도적인 요인이 된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역사가 밝혀지기(=계시) 때문이다. 여기서는 또한 인간 정신의 사변이, 역사적 모습을 취하고 나타난 신의 사랑의 화신(化身) 속에서 그 진정한 구원적 효과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 토마스가 자기의 구상을 밝히고 있는 본문을 보자 : {그러므로 거룩한 가르침의 주요 의도가, 신을 그 자체로 알게 할 뿐 아니라 또한 사물들 특히 이성적 피조물의 원리이자 목적인 한에서 알게 하려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 거룩한 가르침을 다음과 같은 순서로 다루고져 한다 : 무엇보다도 먼저 신에 대해서(1부), 그 다음 이성적 피조물의 신을 향한 여정(旅程)에 대해서(2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인 한에 있어서 우리에게 신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되어 준 그리스도에 대해서(3부)}
그리고 2부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원형 즉 신에 대해서 그리고 신의 의지에 합치하는 신의 능력으로부터 유래된 모든 것에 대해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그의 모상(模像) 즉 인간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다. 인간은 바로 자유 의지와 행동 통제력 덕분에 자기 행위들의 원리인 것이다.}      신=원형, 인간=모상. 성 토마스가 사용하는 이 용어들은 그 세부에 있어서 그가 신플라톤 전통에 의존하고 있음을 노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 토마스가 대학교수 직분을 막 시작하던 젊은 시절의 작품인 "명제집주해(1252-56)"에서도, 그는 똑같은 '신학의 학문 구성'을 명시적으로 제안하였다. 한 주석가로서 그 명제집의 저자(P. Lombardus)2)의 구도에 충실히 연루되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토찰력 있는 진술들 속에는 후대의 독창적 사상의 주도적 골자가 될 대가다운 통찰들이 번득이고 있다. 그는 이렿게 말한다 : [거룩한 가르침은 신에 관한 사정들을 다루려는 것이므로, 그리고 또 어떤 것은 원리 또한 목적인 한에 있어서의 신에 관련될 때 신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가르침은 사물들을 그들의 원리인 신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그리고 그들의 목적인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고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1부에서 명제집의 저자 Petrus Lombardus는 신적 사물들은 그것들이 원리로부터 '전개'되는 것으로 규명하고, 2부에서는 그들의 목적에로 '귀환'하는 것으로 규명한다{...}]
'발원'과 '귀환(exitus et reditus)'. 분명 기독교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성 토마스에게 이 거대한 테마의 표현과 근거들을 제공했을 것이다. 실상 성 토마스 시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위(僞) 디오니시오 전통이 그러했다. 이 전통 속에는 (아우구스티노 전통에서는 다소 심리학적 윤리적 인간관 뒤에 가려져 있는) 이 테마가 그 존재론적 우주론적 의미들을 충만히 잘 보존하고 있다. '발원'과 '귀환' : 이 두겹의 생성 법칙은 확실히, 그것이 어떤 전체적 철학 체계에 묶여 있게 되는 플로티누스의 철학에서와 같은 매우 특수한 구조 연관을 더 이상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 테마는 이제 어떤 우주관을 위한 공허한 도식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기독교 세계의 정신적 조망 속에 들어와 자리잡고 있었다. 더 더욱 정통 교의(orthodoxa)의 요구들이 이 테마를 유출설(emanationism)이라는 본래적 맥락에서부터 따로 갈라 내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실상 희랍 철학에서 모든 생성의 리듬인 것으로 규정된 우주론적 숙명론과 관념론적 변증법으로부터 정화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완전히 신의 자유의지에 근거하고 있는 기독교적 창조 및 구원 경륜과는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 원천으로부터 역사 전체를 제거하는) 어떤 우주관 속에 거룩한 역사를 끼워 넣어 진술한다는 까다롭고 역설적인 듯이 보이는 구상 속에서만 해결될 수 있었다.
성 토마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초라하게 축소되어버린 요약적 도식을 그 모든 세부 가능성까지 샅샅이 탐색한다. 이것은 그에게는 거룩한 가르침의 방대한 자료를 마음내키는 대로 배열하는 어떤 편리한 도식으로서가 아니라, 계시 내용들의 테두리 속으로 '가지성(intelligibilitas : 이해 가능성 내지 합리성)'을 삽입해 넣는 '교육을 위한 질서'로서의 도식인 것이다. 이것은 실상 신학자들이 찾고 있던 바로 그 뛰어난 '가지성'이다. 이로써 성 토마스의 학문은 부분적으로는 희랍의 인식론과의 단절을 초래한다. 신학자들은 우연적인 사실들의 테두리 속에서 '근거들'(성 안셀무스는 "필연적 근거들"이라고 부른다)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모든 증명 체계와 신학적 결론들은 어떤 소여(datum)에 근거하고 있는데 인간 정신은 그 '적합성(convenientia)'을 (그러나 결코 그 '필연성'이 아니다)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각 논술(창조. 피조물의 위계. 육화. 구원. 교회. 성사 등등)의 시작 부분에서 신학자의 첫걸음은 이 '사실들'의 적합성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에서 볼 때는 전혀 구미에 맞지는 않으나, 신학적 인식론에서는 그토록 중요한) 이 특수한 유형의 가지성(=신학자에 의해 이해된 적합성의 논변)과 (신적 자유가 결정적 계기들 속에서 그 개진의 리듬이 되는) '발원-귀환' 도식 사이에는 어떤 감추어진 유사성이 있다. 이 관계속에서 거룩한 역사와 '교육 순서'는 그들을 다같이 신의 절대성 아래 복속시키고 그들에게 그 결정적인 가지적 일관성을 제공하게 되는 '신앙'의 주재 하에 조화있게 결합된다. "신학대전"의 구상은 참으로 하나의 신학적 구상이다. 즉 거기서 '신의 학문'은 인간의 학문의 형상적 영적 원리이며, 후자에게 그 대상과 빛과 필연성의 성격을 한꺼번에 제공해 준다.
더욱이 이 구상은 신학을 (그 자체로 고찰된 역사적 구원 사건을 넘어) 이 구원 경륜을 주재하는 신적 근거들로 이끌어 준다. 진정 신학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수동적으로 신앙과 은총을 받게 되는 구원 경륜이 아니라) 실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바로 신 자신이다. 신이 역사속에서 펼친 그 모든 것은, 즉 창조와 재창조의 모든 위업들은, 성서의 설화들에 충실한 채로 남아 있는 우고 쌩 빅똘의 말을 빌리자면, '형상적으로' 다루어지고 '신에 근거해서' 판단된다 : "거룩한 가르침 속에서 모든 것은 신의 형상성(形相性 formalitas)속에서 취급된다. 그것들은 신 자신이거나, 아니면 자기들의 원리와 목적으로서 신을 향해 질서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신의 신성의 풍부한 흘러넘침 속에서 육화사건 자체가 해명되게 된다(신학대전 3부 제1문). 분명 그 속에 모든 역사적 범주들을 뛰어 넘고 신학을 '지혜'로 만들어 주는 '가지성'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이미 본대로, 성 토마스가 그의 "대전"을 위해 선택한 '질서'의 고유 특징은, 바로 그것이 원리로서 그리고 목적으로서의 신과의 관계 위에 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명제집 주해"의 시작부분을 읽어보기로 하자 : [... 이 가르침은 사물들을 그들의 원리인 신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그리고 그들의 목적인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고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1부에서...]. 일단 그 유출설적 의미들이 제거되고 나면, 이 신플라톤주의적 도식은 그 자체로 신과의 연관성을 표면화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모든 것. 모든 사건. 모든 본성들이 다 신학의 대상이 된다. [피조물에 대한 탐구는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맡겨지는데, 똑같은 방식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철학자들'은 그것들을 그 바로 본성 자체 속에서 탐구하고, 그래서 그들의 탐구는 사물들의 고유 원인과 특성 인식에로 향한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피조물들을 그들의 첫 원리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으로, 그리고 그들의 목적(=신)에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바라본다. 이리하여 신학자들의 지식은 정당하게도 '신적인 지혜'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의 궁극 원인 즉 신을 고찰하기 때문이다]. "신학대전"의 구상과 그 구조들은 바로 신학의 대상의 본성에서부터 유래된다. 이것은 그 어느 다른 구상보다도 참으로 적절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경지에까지 도달한 신학은, 고도로 합리적인 조직 구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종교적 지식이다. 그 각각의 요소들은 그 내면으로부터 신과 신의 말씀에 연관된다. 그 통일성은 신학을 일종의 거룩한 형이상학으로 환원시키고 거기 영적이고 경건한 암시들을 곁들일(밖에서부터 오는) 어떤 철학적 범주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심장부에 있는 '신비한 통일성'에서 온다. 특별히 2부를 해석하면서 나는 본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조들이 제시되고 그토록 세밀하게 주해되고 있는데 반해, 그 무성한 줄기와 잎사귀에 생명을 주는 복음과 교부들의 내적인 영성적 수액들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조들은 "신학대전"의 신학에 결코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아구구스티노의 신학. 디오니시오의 신학. 니싸의 그레고리오의 신학에 깊이 배어들어 있는 플라톤의 범주들이 부수적인 것들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러나 신학의 체계화는 어쨋든 자기 자신을 거스르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신의 나라의 낯설은 논리'를 존중해야 한다. 이 신의 나라의 구상들은 신비의 어둠 속에서 (그리고 왕국의 실패의 역사 속에서) 표명되고, 또 그 실현의 적합성 속에서(그리고 신이 세운 교회가 성취해 온 성공의 역사 속에서) 표명된다. 신학은 '거룩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언제나 '복음서' 즉 신의 말씀에로 되돌아간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의 생각 속에서 성취되기 때문이다.
신플라톤주의적 도식이 혹자의 마음 속에 남길 수 있는 통속성을 흩어버리기 위해서는, 더 더욱 성 토마스의 구상의 뛰어난 독창성을 포착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당대의 다른 시도들과 대조해 보는 것으로 넉넉하리라. 그의 구상의 조직적 힘은 (내적 추동력으로부터가 아니라) 그저 다만 거룩한 가르침의 자료들만 가지고 구성된 아벨라르두스의 구상(신앙 사랑 성사)과 나란히 비교해 볼 때 즉시로 명백해진다.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에서 발견되는(그리고 일반적으로 당대에 통용되던) 재료 배열에 견주어 볼 때 "신학대전"은 (인간 영혼의 영적 여정의 알맞은 근거를 제공해 주는 인식론과 인간학이 표명되고 있는) 아우구스티노의 대범주들 'res et signa. uti et frui(사물들과 표지들, 사용과 향유)'를 작품 속에 활용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도 성 토마스 자신의 구산에 비춰 볼 때 객관적인 폭과 사변적 깊이를 지니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 아우구스티노의 대범주들은 그 초점이 신의 작품 자체가 아니라 인간 심리학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성 토마스가 자신의 사상을 개진하고 있는 이 웅장한 구도의 굵은 흐름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2) 그의 유명한 저술 "명제집(Libri Quattuor sententiarum)"은 1142-1158년 사이에 집필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고금의 저명한 기독교 사상가들의 '의견들'을 체계적인 형식으로 수집하고, '실제(res)'와 '상징(signa)'이라는 두 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첫 세 권에서는 '실재'를 다룬다 : 1권(신), 2권(영적 피조물들 즉 천사들), 3권(인간 본성 - 그 범죄 가능성과 조건들 및 그리스도로 인해 가능해진 구원 가능성), 그리고 마지막 4권에서는 은총과 영생의 표지들인 성사들을 다룬다. 그의 이 논술은 13세기부터 각 대학 신학부의 정식 교재로 채택되어 강독되고(16세기 말까지) 쟁쟁한 신학 교수들은 한결같이 이 "명제집"에 대한 '주해서'를 다투어 작성하게 되었다.
3. 신학대전의 구조


어떤 대 건축가가 자기의 구상을 실현하려면, 먼저 그가 그의 작품에 부여할 질서를 자기의 정신 속에서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의 창조적 재능은 재료의 수집 및 배열, 여러 기능들 간의 조화, 각 부분들 간의 상호관계, 이 영감적 구상의 일관성 있는 개진 등 구조적인 순서로 전개될 것이다. 그는 건축의 '설계도'라 불리우는 어떤 청사진을 고안해 낼 것이다. 그렇다면 성 토마스가 그의 웅장한 신학대전을 위해 고안해 낸 '설계도'는 무엇인가?
두 개의 과정이 이 작품의 ㅇ;ㄹ반적 특성을 형성한다. 이들은 '발원-귀환'의 원리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 a) 신학대전에서 '발원-귀환'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운동을 통일성 속에서 밀접히 연결시키는 두 부분을 가르킨다 : 1부 발원, 2부 귀환. b) 구원 경륜위 중심인 육화(Incarnatio)는, 신이 원한 수단으로서 이 궤도 속에 삽입되게 된다. 이것이 3부다. 이 3부는 추상적인 정신 구조를 가진 자에게는 이미 이루어진 일들에 덧붙여진 어떤 군더더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1) 신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구원 경륜의 줄거리를 구성하는 역사적인 내용들, 즉 ‘신적 섭리의 시간적 개진의 역사’(성 아우구스티노)를 검토해 볼 때, 신의 품에서부터 나와 그 모든 것을 당신께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순환의 두 궤도가 얼마나 서로서로 잘 조화되고 있는지 놀라게 된다. 거기엔 ‘인식론적’ 질서에 놀라운 재료를 제공하는 ‘존재론적’ 질서가 있다. 거룩한 역사에 관련된 사실들의 적절하고 지혜로운 배열을 통해서(예컨대 ‘창세기’ 사건들은, 1부에서 첫 인간이 다루어지지만, 그들의 원죄에 대해서는 2부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 순서는 또한 학문적인 분석과 신학적 문제 제기의 토대를 제공해 준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조 전반에 걸친 안목으로 ‘발원-귀환’ 궤도 자체에, 특히나 소여들의 체계적 배열보다는 적절한 ‘가지성의 원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희랍 사상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플라톤의 이성이, 여기서 기독교 영역 속으로 옮겨져 온다. 그러나 어떤 대상 자격으로서도 아니고 빛으로서도 아니다. 왜냐하면 신학의 훌륭한 결실들의 재료와 원천은 본질적으로 기독교적이기 때문이다. 희랍 사상은 하나의 단순한 ‘도구’로 채택된다 ? 그러나 물론 자연과 은총의 일관성 때문에, 하나의 가치있는 진정한 도구로서 말이다.
‘발원-귀환’은 그 충만한 의미에서 ‘가지적’이다. 모든 피조물 특히 인간들의 사건들은, 그들의 정신에 의미와 가치를 주는 두 근거로서, 두개의 원인 즉 능동인(能動因)인 신-창조주-보존자(1부)와 목적인(目的因)인 신-축복자-영광받는 자(2부) 사이에 자리잡는다. 게다가 존재들의 산출과(실재와 본성들 속에 고정되는 것으로 완성되는) 그들의 ‘전개(processio)’는 귀환의 고유 근거이고 그 가능성, 방식, 전개의 존재론적 토대이다. 왜냐하면 창조됨은 그 종점에 가서, 당연히, 그 반대되는 움직임 즉 ‘돌이킴(conversio)’과 더불어, 그 창조의 원리에로 재연결되기 때문이다. 신학적 체계화에 있어서 이 두 과정은 따로 따로 연구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하나의 궤도라는 점이다. 그 통일성과 가지성은, 그 목적과 형상이 능동인인 신의 지성에 의해 구상된 그대로 서로서로 일치하는 ‘본성들’에 기초하고 있다. 달리 말해 신학은 두드러지게 ‘통일적’인 학문이다. 교의신학과 윤리는 대립적인 두 영역이 아니다. 하나는 사변적(speculativa)이고 하나는 실천적(practica)으로서, 같은 한 실재의 두 얼굴인 셈이다. 사변적 범주와 윤리적 범주는 어떤 구분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술적인 차이들의 이점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행위는 (그리고 그 덕분에 인간이 조직하고 관리하는 우주 전체는) ‘발걸음’과 같아서, 그것을 통해서 귀환길에 있는 인간 본성의 목적. 행복. 완성 등이 모두 함께 성취된다. 이 행위와 그 규범들에 대한 실천적 인식은, 신의 계획과 그 예정들에 따른 인간 본성에 고유한 인식의 내밀한 부분이다. 이리하여 신학자의 학문은 ‘완벽한 신의 학문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하나이자 동일한 인식으로써 당신이 누구이고 또 무엇을 행하는 지 알기’ 때문이다.(신학대전 1부 1문 4항)
이 충만한 가지성은, 신학의 참된 영적, 학문적 자리인 ‘신의 관념들’에 까지 우리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물들의 본성으로부터 설명되는 합리적 설명과 종교적인 설명을 동시에 결합시키기 때문이다. 이 본성들은 그 자체로 그리고 또 신의 안배 속에서 ‘신의 관념들’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이미 신플라톤주의자가 사물들에 대한 합리적 설명의 원리와 종교적 생활의 원리를 동일시하려 시도했었으나, 범신론(pantheism)dl 그들의 시도를 좌절시켰다. 그러나 성 토마스는 모든 것의 원리이자 목적인 신의 초월적 인격성을 조금도 손상함이 없이 유출설과 귀환의 이론으로부터 모든 이점과 진리들을 끌어 낼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웅장한 신학대전의 원리이자 동시에 신학적 지식의 통일의 범주적 근거이다. 근대인들은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을 갈라 놓고서 위험한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윤리신학은 단순한 계율들의 목록도 아니고 우리의 기능들을 넘는 저 경험 넘어로의 신기한 비약도 아니다. 윤리신학은 실천적 학문이다. ‘영적 유기체’(=인간)가 그 주된 재료이다. 이 유기체는 우리 속에 하나의 본성(natura)으로서 실존한다. 이 본성이 바로 신을 향한 우리의 ‘귀환’의 원리이고, 이 귀환이 요구하는 모든 덕행들의 원리이다. ‘모상’은 ‘원형’과 일치를 이룬다 : [… 인간은 신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 … 원형(原形) 즉 신에 대해 …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그의 모상 즉 인간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다] (신학대전 2부 머리글)
참으로 신학대전의 1부와 2부의 구상은 성 토마스의 정신을 알게 해 주는 ‘접근로’이다. 그러나 논술 구조에 있어서의 교육학적 유용성이, 대치할 수 없고 결정적인 가지성(즉 합리적인 이해 가능성의 원리)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귀환’이라는 동일한 도식은(이제 우리는 이것이 단지 하나의 ‘도식’인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3부의 주도적 원리이고 그 해결의 열쇠가 된다. 중재자 그리스도는 이 귀환의 인도자가 되고 바로 ‘길’이 된다 : [왜냐하면 우리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 당신 자신이 우리를 위한 진리의 ‘길’임을 보여 주었다. … 이제 인생의 최종 목적과 덕행 및 악습들을 살펴보았으니, 신학에 관련된 모든 것을 완성하기에는, 이 길을 따라 우리 모두의 구세주 자신에 대해서 … 고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3부 머리글)
물론 이것이 신학에 있어서, 육화의 사실과 그리스도의 역할을 일반 구원 경륜 속에 편입시키려는 첫 시도는 아니었다. 실상 플라톤적 도식이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 이용되게 되엇을 때, 그것은 항상 그리스도를 귀환과정이 성취되어 나아가는 ‘길’로서 제시했다. 스코투스 에리우제나(9세기)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그러나 다소 경솔하게) 이 노선을 따라 구원사 신학을 그려냈다. 그러나 성 토마스와 더불어 이 플라톤 체계의 선택은 그 잠재력을 남김없이 다 표출하게 된다.
신학대전의 구상을 거슬러 가끔 근대 신학자들과 영성 신학자들이 제기하는 이의들 중 하나는, 이 구상은 그리스도가 무대에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충만히 발전된 신학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화 사건은 구원 계획 전체에 ‘사후에’ 추가 편입되는 것처럼 나타난다. 구체적인 구원사가, 마치 어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유(contingentia)처럼, 신. 은총. 덕행들에 대한 일종의 추상적 형이상학에 덧붙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로서 제일선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론의 일부로서 나타나고 있다. 또 특별히 ‘은총론이 그리스도교적 은총론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신의 사랑을 계시한 분(그리스도)이 언급되지 않은 채 사랑을 논하고 있다’.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가 고찰되지 않은 채 명상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1부와 2부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겨우 암시뿐이거나 우연적 언급만으로 지나치고 있다’는 골자의 비난들이 (때로는 열을 올려가며) 제기되곤 하였다.
이런 반론들은 우리로 하여금 성 토마스의 근본적 입장을 직시할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성 토마스는 자기 입장을 오직 “신학대전”을 ‘교육할’ 목적에서 작업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어느 부분에서 다른 신학적 체계들과 의도적으로 단절하고 있는 듯이 보이더라도 결코 놀랄 일이 못된다. 은총에 대한 논술이 유일한 중재자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랑에 관한 논술이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유일한 초대’(1고린 3.11)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 또 명상에 관한 논의에서 성부를 계시하는 유일한 그분이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육화는 한 우연적인 사건이고 그것은 신의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의지의 절대적으로 은혜로운 사업으로만 ‘발원-귀환’ 도식에 편입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예정은 실상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 궤도의 경륜 속에 당당한 권리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것은 신의 변증법적 선포(계시) 목록 속에 ‘선험적으로’ 유치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육화의 동기’와 ‘그리스도의 절대적 우위’에 관한 토미스트 학파와 둔스 스코투스 학파 간의 유명한 논쟁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쟁에 말려들어가는 것은 시간 낭비다. 다만 성 토마스의 가르침은 이미 신학대전의 구상 속을 관통하고 있고 거기서 잘 드러난다는 점만을 지적하고 넘어가자. 그나머지는 그 자연적 귀결들이다. ‘은총’은 ‘기독교적’이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은 채, 그 자체로, 신적 생명에로의 참여로서, 탐구되고 있다. 왜냐하면 은총은 그 실현이라는 시간적 조건을 넘어 그 자체로 자기 고유의 본성. 고유한 구조. 고유한 법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육화 사건은 그 뒤에 따라올 것이다. ‘사랑’은 ‘신과 나누는 우정’으로 정의된다. 이것은 그 자체로 고찰될 성질의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요한 17장)을 조금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신 직관’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그렇지만 신에 대한 지식은 먼저 그 구현들과 구현 양상들 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 이 양상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 지 알기 이전에 말이다. ‘구새주의 육화’는 구원 경륜의 실체 자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그 ‘가지성’의 기본 원천은 그가 ‘수단’이라는 점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은총의 존재론적 틀 속에 육화 사건이 편입되는 것으로 본다고 해서 조금도 그 놀라운 역사적 육화 사건이 감소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신에 대한 사변과 구원 역사를 한 단일 학문 속에 담으려는 시도를 무모하다고 간주해야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신의 자유의 우연유성에 주의를 기울이길 거절하면서 신학을 단지 하나의 ‘순수 영역’으로 환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2부에서 3부로 넘어감은, 필연 질서에서 역사적 실현으로, 구조 영역에서 신의 선물의 구체적 역사로 넘어감을 뜻한다. 실상 신플라톤주의와 그 엄격한 ‘전개’이론 속에서 바로 기독교적 가르침이 누락되고 있는데 반해, 성 토마스의 구상은 그가 플라톤적 도식을 활용하는 순간에도 그 도식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기독교의 육화된 말씀은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에 있어서의 ‘창조자 Logos’가 아니라) 한 ‘역사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데, 플로티누스는 ‘시간’을 하나의 더럽혀진 어떤 것으로, ‘신의 자유’를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불완전함이라고 보고 기각시켜 버린다. 신학은, 신의 초월성과 부드러운 감정, 그리고 어떤 필연성의 학문과 영원히 자유로운 한 사람의 우연성에 대한 존중을 결합시킴으로써, 어떤 역설적인 성공을 이루게 된다. “신학대전”의 3부는 바로 이 성공의 역사이다.
한 가지 더 관찰할 것이 남아 있다 : 구원 경륜울 구성하는 여러 ‘사건들’이 (지성의 합리적 연관 구조를 통해 그 사건들의 계기를 위한 틀을 마련해 주고 때론 그것들을 대신하는) 신학 구조 속에 어떻게 편입되었는가? 역사적인 것에서 학문적인 것에로의 이월은 어느 정도 가치의 전위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실재’에 대한 모든 ‘체계’는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체계는 실재를 다 흡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자는 부단히 성서의 사실로 되돌아감으로써 이 손실을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성서신학’이 바로 이 고등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신학대전 속에는 신학 교본 저자들이나 주석가들이 너무도 자주 따로 치워두어야 할 것으로 간주했던, 바로 그 ‘성서신학’이 들어있다. 물론 그 중 어떤 부분들은 오늘날의 발전된 성서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낡은 것이리라. 그리고 또한 그 전에는 한 가지 학문에서 다루던 탐구 영역이 새로운 방법론의 발전과 함께 세분화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신학대전 전체에 걸쳐 성서적 영역에 대한 원리가 남아 있고, 그래서 그 누구도 “대전”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치하거나 그 의미를 말소할 수 없다. 성서를 다루고 있는 부분들은 많지만, 다음과 같은 3개의 커다란 덩어리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 ‘6일간의 창조(1부 67~74뭄), ‘옛 법”(1~2부 98~106문), ‘그리스도의 삶과 신비’(3부 27~59문), 채택되고 있는 주석 방식들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해서 성서가 신학 속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지워질 수는 없다. 현대 토미스트 신학은, 인간에게 맡겨진 우주와 지상 피조물. 구약성서의 예언적이고 역사적인 전망. (지금은 주석가와 영성 저술가들 손에 넘어간) 복음 자체 등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광채와 현실성을 상실하고 말았던가! 또 다른 예들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 공관 복음의 진복 팔단, 사도 바오로의 성령의 선물들, 십계명의 계율들, 은사(charisma)들 등등.
계시 소여에 대한 합리적 체계화는 분명(역사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부적합성도 없지 않은) 전망의 변위를 가져왔다. ‘옛 법’ 즉 뛰어난 의미의 법은 부득불 논리적 이유로 법 일반에 관한 논술 다음에 오게 되었다. 이리하여 ‘옛 법’의 역사적 역할은 어느 정도 일련의 추상적 범주들로 환원되었다. 그 결과 성 토마스는 ‘사도행전’에서 그것들이 완전히 구세주 그리스도에게 연관될 때 가지게 되는 그 역동적인 의미에 대해 충분히 고찰함이 없이 ‘옛 법’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본문들을 분석할 수 밖에 없다.
‘신학적 인간학’은, 그 당시 인류의 상태에 대한 연구 검토를 통해서, 성 토마스 이전에 이미 상당히 발전해 있었다 : 신의 손으로 빚어진 원시상태에서부터 원죄 이후 상태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된 다음의 상태, 우리는 아우구스티노가 이 인간의 역사적 ‘상태들’에 대해 얼마만한 노력을 기울여 고찰했는지, 그 대신 인간 본성의 이론적 조건 탐구에 대해선 얼마나 소홀히 취급했는 지를 잘 알고 있다. “신학대전”의 구상은 성 토마스로 하여금 이 두 관점을 균형있게 종합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실상 그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주제이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적 상황 분석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간 본성을 그 자체로 고찰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단계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더불어 인간 본성에 관한 학문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개인적인 전망에서 나머지 한 쪽을 고려하지 않고도 신학적 인간학을 구성할 수 있었다치더라도, 아우구스티노 전통의 근대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노 신학을 체계화시키면서 바로 이 도외시된 한 쪽 측면의 결핍으로 인한 무게 때문에 짖눌리게 되었다. 그러나 성 아우구스티노의 실재론적 분위기에 우리가 호소한 이유는, 비슷한 종류의 주석을 하면서 저런 어떤 결핍에 떨어지지 말자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즉 인간 본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론적 분석을 한답시고, 성 아우구스티노의 기독교적 인간관을 온전히 수용하는 성 토마스의 신학 자세를 주목하는데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성 보나벤뚜라나 둔스 스코투스를 따르는 신학자들은 자주 성 토마스의 “신학대전”같은 형식으로 보나벤뚜라나 스코투스의 ‘대전’을 작성해 보려고 시도했었다. ? 순수한 열정으로. 성토마스의 제자들은 그것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보편적박사”(Doctor Communis : 성 토마스의 칭호)의 뛰어남에 대한 애정어린 형제적 증언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런 사실들은, “대전”을 (그 정신이 더 이상 살아남아 있지 않은) 근대적인 범주와 논설들로 분해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가 말해온 것에 비추어 볼 때, “대전”에 대한 어떤 손질이나 작업도 분명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확실히 신학은 발전했다. 변위작업은 불가피할지 모른다. 늘 열려진 종합속에서 신앙과 성령의 활력으로 이루어진 작엊의 결실들을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학대전의 진정한 주해를 위해서는 그리고 (감히 말하지만) 그와 비슷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구상 속에 담겨있는 ‘가지적통합성’을 그 내밀한 깊이 속에서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한 신학자는 그가 작성한 ‘대전’에 의해 평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것이 이론적으로 중요하고 교육학적으로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대전’은 전체적으로 그것을 구성한 자의 신앙의 빛과 신앙 상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어떤 ‘대전’도 쓴 적이 없다. 그렇지만 하나의 ‘대전’은 그 주인인 저자의 신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적 작품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세상을 살면서 결코 그것을 결(缺)할 수 없을 것이다. “알아듣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s). 그의 걸작인 신학대전 덕분에 성토마스는 위대한 신학자이고 ‘교회의 박사’이다. 신학대전은 그 고유의 차원에 있어서 바로 복음의 충만함이다.

지금까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요약의 부록 중 'SUMMA'란 무엇인가?'와 '구원의 역사와 교육의 순서', 신학대전의 구조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2012년 1월 10일 안토니오